2007년 11월 25일
서평: 초난감 기업의 조건
『초난감 기업의 조건』
IBM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까지, 초우량 기업을 망친 최악의 마케팅
릭 채프먼 지음 | 박재호 이해영 옮김 | 584페이지 | 18,000원 | 9788960770232
[첫인상]
직접적인 마케팅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다. 부제는 살짝 낚시인데다가 책임을 geek가 마케팅 파트에 떠넘기려는 혐의가 묻어난다고 하면 과잉 해석이겠지요? :) (519p에서 작가는 재앙은 마케팅 부서 뿐만 아니라 경영진-개발부서-영업부서-마케팅부서가 모두 힘을 합쳐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과 상식과 과거 교훈을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무시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서문에서 작가도 인정한 것이지만, 이 책은 대안을 논하기보다는 보면서 (특히 프로그래머가) 낄낄거릴 수 있는 실패담을 소개하는 쪽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300 페이지 정도 참 재미있게 봤지만, 조엘의 오프라인 블로그나 피플웨어처럼 구체적인 교훈(!)이 느껴지는 책은 아니다. 물론 필자의 오랜 IT 업계 경륜에서 우러나온 에피소드들은 컬트적으로 즐겁긴 하지만서도.
아마 80년대/90년대 초입 해외 PC/소프트웨어 업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다 아는 이야기가 많을 거고, 그렇지 못한 (예를 들어 마케터) 사람이라면 아마 외계어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dBASE나 DR-DOS가 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640kb가 바다와 같이 넓었던 시대의 경험자와 비경험자에게 이 책은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한마디로 사람을 많이 가리는 책이라는 뜻이다.
번역은 어색하지 않지만, 원문 자체가 이른바 양키 개그, GEEK 업계 개그에 서브컬쳐 용어 (고지라-기드라 같은.)의 범벅이라 독자가 넘어야 하는 허들은 더욱 높을 듯 하다.
[내용]
이 책은 IT 업계, 특히 미국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업계의 멍청한 기술적 가치판단으로 인한 처절한 실패담들을 꽤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예를 든다면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한 실패 사례인 이리듐으로 시작해서, OS/2(warp), IBM과 MS의 OS 납품 계약, IBM의 PC 쥬니어를 비롯한 기능 감축 마케팅, 워드스타2000과 dbaseIV에 관련된 우울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조금 오래된 듯한 꺼리에서 불완전 연소한 닷컴 열풍, MS의 반독점 소송이나 구글이 중국에서 이미지 구긴 일들까지 이 책은 열심히 메스로 해부하면서 까댄다. :]
아, 펜티엄의 부동소수점 버그 이후 인텔의 삽질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쪽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조금씩은 전부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그게 이 책의 재미이고, 흠이기도 할 법 하겠다. 나는 단편적으로 알던 에피소드들을 술자리에서 듣는 기분이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작가는 애플 역시 MS랑 별로 다를게 없는 얼간이 괴물로 이야길 하는데, 애플 팬이라면 조금 마음 아플 문단이 몇몇 보인다. 예를 들어 인텔 맥이 나왔으니 머지 않아서 애플이 컴 사업을 접지 않겠느냐.. 같은.
기술적으로 무지한 마케터/경영진과 사업적으로 개념이 없는 기술인력들이 만나면, 수백 수천억 짜리 회사에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한 일들이 발생한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사람 사는 동네는 비슷한 모양이다. 하하. - - 우리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흔한 이슈 아닌가. 그리고 이 문제를 극복한 회사야말로 난감하지 않고 우량한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초난감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는 여는 글에서 조엘 스포스키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로그래머가 조타수(핵심 가치판단을 하는 위치)가 아닌 소프트웨어 회사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초난감한 실수 중 대다수는 프로그래머 스스로가 저질러 왔다는 사실 또한 인정한다." 그 밑 문단을 조금 발췌한다.
넷스케이프사는 기존 코드를 개선하는 대신 브라우저를 새로 짜겠다는 기념비적인 결정으로 여러 해를 낭비했다. 그 동안 시장 점유율은 90%에서 4% 정도로 곤두박칠쳤고, 이는 바로 프로그래머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물론 기술지식도 없고 경험도 부족했던 경영진은 코드를 다시 짜겠다는 결정이 왜 나쁜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도 넷스케이프가 내린 결정을 옹호하는 개발자가 많다. "조엘씨, 옛날 코드는 정말로 엉망이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런 프로그래머는 깨끗한 코드에 대한 애정을 높이 사서 존경해야 마땅하지만, 비지니스 결정을 내릴 때는 100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출시보다 깨끗한 코드가 더 중요한 사람이니까.
릭 채프먼은 조엘의 이야기를 부드럽게 반박하며, 그렇기 때문에 경영진에게 다양성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성공한 첨단 기술 기업을 보면, 흥미롭게도 많은 기업이 "쌍두마차" 시스템을 따른다고 한다. 게이츠/발머, 잡스/워즈니악처럼. 우리 위메이드도 현재 그런 체제다. CEO와 CTO가 서로의 분야에서 끌고 나가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마케터한테 기술 지식을 주입하는 거나 개발자에게 "건전하고도 스마트한" 사업 마인드를 주입하는 거나 "의외로" 난이도는 비슷할 거라고 본다. 아니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해봅시다 우리.(- -)
이런 문제를 "프로그래머 아닌 사람은 입닥치쇼"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피해 의식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역으로 분명 자신이 전혀 캐치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스럽다. 남을 경멸하면, 결국 자신도 경멸받는다. 결과적으로 모든 파트는 다른 분야와 협업하고, 크로스오버될 수 밖에 없기도 하고, 그래야 또 발전할 수 있다.
사족이지만, 공대 나와서 MBA 다녀온 사람들이 괜히 각광 받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엘은 MBA를 싫어한다는게 좀 모순이려나. 개인적으로는 기술 경영이라는 분야에 굉장히 큰 흥미를 느끼고 있고, 또 크나큰 비전이 있다고 본다.
[대안 ?]
583p에 달하는 두꺼운 책인데, 미괄식 구성이다. 정 시간이 없다면 13장과 14장만 잘 읽어도 의미있는 독서가 될 듯 하다.
# 먼저 자신을 알자.
필자는 기업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자기 회사의 유형을 솔직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어느 한 유형에만 속하는 기업은 드물다.
- 기술 위주 기업 - 개발 팀의 의사와 목표에 지배를 받는다. 이 유형의 가장 큰 문제는 시장이 원하는 기능과 이익을 제공하기보다 개발 팀이 만족해하는 제품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 영업 위주 기업 - 분기별 영업 실적을 맞추려고 끼워팔기, 강매 등을 통해 재고가 쌓이든 말든 영업만 죽자고 하는 회사다.
- 시장 위주 기업 - 고객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이다. 조직 내 모든 그룹이 이기심을 버리고 고객 요구에 부응하므로 가장 성공하는 기업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유형도 문제가 있는데, 변화를 꺼리고 수동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예컨데 무료 AS 전화를 통해 고객과 좋은 관계를 형성했던 워드퍼펙트사는 도스 유저가 너무 많다보니 윈도우 개발은 안 중요하다는 착각에 빠졌다.
- 재무 위주 기업 - GM. 아무도 몰고 싶지 않은 차를 좀 더 경제적으로 제조하는 다양한 비용 절감 프로그램을 내놓다가 초난감해졌다.
회사 내 다른 파트랑 물어뜯지 마라능.
# 사례와 교훈
2장 - 회사가 크든 작든 초난감한 상황에 이르는 능력은 별 차이 없다.
3장 - 인기 제품을 모사한 짝퉁 제품은 절대로 안 팔린다.
4장 - 소프트 웨어는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이므로, 시장과 유저가 제품을 "보고" 가치를 쉽게 개념화하도록 제품에 물리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다. 포지셔닝 절차의 궁극적인 목표는 캡슐화이다. 캡슐화의 궁긍적인 목표는 제품의 시장 정체성, 즉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구매자 마음 속에 제품 개념과 아이디어와 연관성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정체성 확립에 있다.
7장 - 업데이트는 적시에 해야 한다, 결정적인 시기에 핵심 인력을 소흘히 대하면 안된다. 난해한 기술을 팔겠다고 고객 캠페인을 벌이지 마라. 도대체 한국의 그 뼛속까지 캐쥬얼한 유저들에게 하복 엔진 썼으니까 게임 해보라고 하면 어쩌겠다는건지.
8장 - 펜티엄 버그처럼 사고가 터졌으면, 문제를 인정하고 고객의 보호자로 자청하고 나서면서 고객의 손실을 완전히 보상하거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천명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가 시도할 조치를 단계적으로 알린다. 진행 상태를 언론과 고객에게 알리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공지한다. 관련 고객들이 해결책에 만족하는지 의견을 구한다. 숨기거나 별 문제없다고 개기면 회사가 망가진다..
더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사서 보시라. 딱히 구체적인 마침표가 있는 책은 아니고, 말미의 조엘 스폴스키 인터뷰가 결론을 대신하는 듯 하다.
[결론]
분명 재미있는 책이다. 문돌이 마케터를 위한 교양도서는 아닐지언정, IT회사의 관리자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은 무궁무진하겠다. 작가의 신랄한 문장들과 이런 저런 이슈 (MS나 애플의 미래, SaaS 등) 에 대한 논평도 즐겁고.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을 많이 가리는 책이라서. 같은 출판사의 "신기술 성공의 법칙"과 같이 읽으면 좋은 짝이 될 듯 하다. 그래도 모든 사람에게 필독서라고 추천하기에는 대부분의 내용이 좀 다른 의미로 하드하다. 이 책 앞부분을 재미있게 읽는 당신은 분명 뼛속까지 geek.
그리고 추천사, 작가 서문, 역자 서문을 다 합쳐서 50페이지는 너무 하더라. 본문 들어가기도 전에 지칠 뻔 했다. ;; 그나저나 한국의 IT/게임 업계쪽의 초난감한 사례도 만만치 않을텐데. 내 주변 사람들이 아는 것만 적어나가도 안드로메다 3바퀴는 왕복할 수 있을 걸...
에이콘은 참으로 고마운 책을 많이 내주는 좋은>_< 출판사지만 조엘 울궈먹는거에서 한 발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 by | 2007/11/25 10:33 | 책과감상. | 트랙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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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초난감 기업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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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뼛속깊이 기술지향적 - 필요하지만, 안팔릴게 너무나도 뻔한 ㅠㅠ - 라인업을 보면..
네. 물론 그렇지요. 코드의 재구성 그 자체보다는, 기술 인력과 경영쪽의 커뮤니케이션 오류라던가, 경영진의 잘못된 가치판단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국내에서도 무수히 있는 일 같아요,